화악산(청도 남산) 신둔사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동천리 산 657번지의
화악산(華岳山 혹은 南山) 중턱에 자리잡은
신둔사는 1173년(고려 명종3년) 보조국사(普照國師)가
창건하여 봉림사(鳳林寺)라 하였으며,
1667년(현종8년) 상견대사가 중창하고
1878년(고종15년)에 다시 중수하여
신둔사(薪芚寺)라 개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근대에 와서는 1926년 송호(松湖)스님이 중수하면서
오늘날 신둔사의 기틀을 마련하게 되었다.
현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의 말사이다.
화악산(華岳山)은
경상남도 밀양군과 경상북도 청도군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높이 930m의 산으로,
신비로운 이야기들이 많이 전해오는 곳이다.
화악산 깊은 골짜기에 자리한 신둔사(薪芚寺)는
정상에서 신둔사를 내려다 보면 봉황이 알을 품고 있는
형국의 터로서 주위 산림이 울창하고 물이 맑은 곳으로
경치가 빼어나다.
전하는 이야기에 의하면 옛 삼한시대 때
변한의 소국(小國) 중의 하나인 이서국(伊西國)이
청도지역에 웅거(雄居)하고 있었다.
점차 신라가 강성해져서 이서국을 공격하였는데,
결국 왕성(王城)까지 빼앗기게 되었다.
이때 이서국 왕실 사람들이 이곳으로 피난하여
한 동안 살았다고 한다.
신라군을 피해 은신한 곳이 바로
은왕봉(隱王峰,숨길隱)으로 신둔사와 가까운 거리에
있어 사람들은 신둔사가 이서국 왕실의 은신처와
관련있다고 추정하고 있다.
따라서 지금도 신둔사의 종소리는
은왕봉의 정령(精靈, 죽은 사람의 영혼)을 위로하고,
남산계곡의 ‘취암(醉岩)’과 ‘금사계(金沙界)’등은
수많은 조선시대 문인(文人)들의 세월을 읊은
시(詩)들이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참고 : 섶나무(땔나무)薪, 채소이름 芚)
대웅전 뒤쪽에서 본 신둔사(薪芚寺)의 아담한 전경
청풍루(淸風樓)는 1988년 건립하였으며,
1층은 사찰 경내로 진입하는 출입구로 사용하고,
2층은 법회시 강당 으로 사용되는 공간이다.
대웅전 앞마당에서 본 청풍루(淸風樓)
청풍루(淸風樓)의 1층 출입구 위에 걸려있는
신둔사(薪芚寺) 편액(扁額)
청풍루(淸風樓)의 2층에 걸려있는 청풍루(淸風樓)
편액(扁額)이며, 관지(款識)는
"己巳年冬至月 休耕雲水書
(기사년동지월 휴경운수서)"라고 적혀있음으로
청풍루는 1988년에 짓고, 편액은 1989년에 쓴 것이다.
대웅전(大雄殿)은 정면 3칸,
측면 2칸 맞배지붕으로 측면에 풍판을 단
조선시대에 중건한 건물이다.
대웅전 내의 불단에는 단독의 석가모니부처님 좌상이
봉안되어 있고 후불탱은 금어(金漁)
김벽산(金碧山)스님이 그린 석가모니 후불탱으로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좌협시는 관세음보살과
가섭존자이고, 우협시는 대세지보살과 아난존자가
시립하고 있는 후불탱이다.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좌측에는 신중탱이,
우측에는 지장탱이 걸려있는데 화기가
"大正7年陰四月(대정7년음4월)"로 적혀 있어
1918년에 봉안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원찰(願刹)의 경우에 가끔 볼 수 있는
조선후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세자저하수천추(世子低下壽千秋)’라고 쓰여져 있는
목조전패가 대웅전에 모셔져 있었으나 도난 당해
없어지고, 현재는 "나무관세음보살"과
"나무대세지보살"의 명호가 적힌 불명패가
봉안되어 있다.
대웅전의 향우측에 걸려 있는 신중탱이며,
"大正7年陰四月(대정7년음4월)"이라고 적혀있다.
대웅전의 향좌측에 걸려 있는 지장탱이며,
"大正7年陰四月(대정7년음4월)"이라고 적혀있다.
요사채겸 종무소로 사용하고 있는 봉림당(鳳林堂)
칠성탱을 중심으로 좌측에는 독성탱이,
우측에는 산신탱이 함께 봉안되어 있는 삼성각
1924년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영산보탑이라고 하는 오층석탑
범종각
신둔사의 대웅전 뒤쪽 암벽에는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형태의 부도(浮屠)가 있다.
자연암벽에 마치 종(鐘)처럼 생긴 석종형(石鐘形)의
선각(線刻)부도를 새겨 놓았는데,
그 가운데에
“普賢修李氏舍利塔 咸豊二年壬子四月二十日
(보현수이씨사리탑 )
함풍2년임자4월20일)”이란 명문과 사리공이 있어는데,
함풍(咸豊)은 청나라 제9대 문종(1850~1861년)의
연호로, 1852년(철종 3년)에 조성된 것임을 알 수 있는
희귀한 부도이다.
사각구멍을 뚫어 사리를 봉안하고
“舍利塔(사리탑)”이란 명문이 적혀있는 선각(線刻)의
또 다른 석종형(石鐘形)부도로 신둔사에서만 볼 수 있는
부도이다.
암벽에 새겨진 '신령스러운 샘'이란 뜻의
"靈泉(영천)과 "玉如泉(옥여천)"이란 글씨
만들어진지 꽤 오래된 듯한 쇠가죽으로 된 북
6.25전쟁 때 총을 맞아 파손된 금구(禁口)인데,
또는 반자(飯子)라고도 한다.
절에서 대중을 불러모으거나 급한 일을 알리는데
두드리는 도구로서 쇠북이라는 뜻이다.
주로 청동으로 만들며 얇은 북 모양인데 한쪽은 막히고,
다른 쪽은 터져서 속이 비어 있으며
측면에 2~3개의 고리가 있는 형태이다.
'사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설악산 오세암 (0) | 2020.11.06 |
---|---|
용흥사 (0) | 2020.11.05 |
봉정사 영산암 (0) | 2020.11.02 |
통영 미륵산 미래사 (1) | 2020.11.01 |
가야산 해인사의 전설 (1) | 2020.11.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