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

봉정사 영산암

[더 꿈] 감성인 2020. 11. 2.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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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같은 느낌을 주는 절집, 봉정사 영산암
안동시 서후면 태장리(봉정사길 222) 천등산

자락에 위치한 봉정사의 부속 암자인 영산암은

한국 영화사에 길이 빛날

영화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이 촬영된

곳으로 유명하다. 


영산암의 구체적인 건립 연대는 알 수 없으나
「봉정사영산암향로전창건기」와

「봉정사영산전중수기」등의 사료로 볼 때

조선 후기(19세기 말)로 추정된다.

암자는 자연 친화적이며
유교적 생활공간과 닮은 특이한 불교

암자이다.

영산암이라는 이름은 석가모니불이 「법화경」등의

경전을 설법하였던 영취산에서 유래하는데,
보통 줄여서 영산이라 부른다.

석가모니불을 봉안하고 있는 대웅전의 「후불탱화」는

영취산에서「법화경」을 설법하는 장면을

그림으로 그린 것인데, 

흔히 「영산회상도」라고 한다.

그리고 영산암은 영취산에 모여

석가모니불의 설법을 듣는 나한에 초점을 두어

응진전을 중심 건물로 보기 때문에

영산암이라 하였다고 볼 수 있다.

 

 

 영산암 입구의 우화루.

 영산암 입구의 우화루.

 영산암 경내로 진입할 수 있는 우화루 아래의 누문.

 雨花樓(우화루) 편액.
우화(雨花)는 꽃비라는 뜻으로,

석가모니께서 영축산에서 법화경을 처음 설법하실 때,

범천왕이 감응해 꽃을 향기로운 바람에 실어 내려

보냈다고 한 것에서 유래한 말로,

환생을 뜻하는 불교적 의미의 우화루(雨花樓)이다.

 응진전 앞에서 본
우화루 누문 위의 누마루와 다향실(茶香室).
영산암은 낡고 낡은 누마루인
우화루 밑으로 대문이 나 있다.
입구 위에 걸린 ‘雨花樓(우화루)’라는 현판은

원래 봉정사 극락전 입구에 걸려 있던 것이었는데,

1969년 보수 때 극락전 출입문과 벽을 허물면서

현재의 위치로 옮겨 달았다.

우화루의 낮고 비좁은 누하문을 통해서

마당에 들어서면 안마당은 굴곡과 표정이 많아서

봉정사와는 전혀 다른 느낌을 갖게 된다.

일부러 인공산을 만들고 그 곳에 괴석을 배치하고

소나무와 어린 나무들이 잘 가꾸어져 있어

마치 여염집 마당에 들어선 듯한 아늑한 느낌을 받는다.

 관심당 편액이 걸려 있는 당우와 쪽마루,
그리고 우화루의 누마루 일부분.

최근 잘 정돈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수리하는 과정에서 응진전
외벽의 불화가 없어졌으며,
우화루 아래층의 좌우측 칸에는
「화엄경」등의 경판을 보존하였던 곳이었는데,

최근 이 경판들도 어디로 갔는지 알 길이 없다고 한다.

자연 공간을 활용하여 그대로 암자의 분위기를

자연에 동화되도록 만들었다.

따라서 불교의 경건하고 엄숙한 분위기보다는

마치 유교사회의 선비들이 생활하는 공간으로 만든

정자에 있는 기분이 든다.

 칠성과 독성, 그리고 산신을 모신 삼성각.

 삼성각에 모셔진 칠성탱과 독성탱, 산신탱

 측면에서 본 삼성각과 응진전의 모습.

 관심당 건물의 모습.

영산암은 주불전에 해당하는 응진전을 비롯하여

송암당, 관심당, 우화루, 삼성각 등

몇 개의 건물이 네 면을 울타리처럼

두른 모양으로 폐쇄적인 공간처럼 보인다.

응진전, 삼성각, 우화루, 송암당, 관심당 등
5동의 건물이 있고, 특히 외곽 건물인 우화루,

송암당, 관심당이 모두 마루로 연결되어

영산암을 감싸고 있는 모습이다.

그리고 봉정사와 영산암에서는

서로 다른 성격을 띤 세 개의 마당을 본다.

절집에서 흔히 보는 석등이나 석탑조차도 없는

대웅전 앞의 엄숙한 마당,
극락전 앞의 정겨운 마당,
영산암처럼 감정표현이 강하게 나타난

복잡한 마당 등이 눈길을 끈다.

흔히 마당을 제대로 볼 수 있어야

한옥을 제대로 보았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의 전통 음악에서는 음과 음 사이를,
전통 회화에서는 여백을 더욱 소중하게 여긴 것처럼

전통건축에서는 건물 자체가 아니라 방과 방 사이,

혹은 건물과 건물 사이가 더욱 중요한 공간이었기에

전통 한옥에서의 비워진 공간이 되는 마당은

우리 건축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이며 개념이다.

 

 영산암의 주불전에 해당하는 응진전.
나한전이라고도 불리는 응진전의 응진(應眞)이란

진리에 응한다는 뜻이며, 수도하는 스님들에 대한

신앙의 결과로 나타난 사찰의 전각이다.

나한전은 석가모니를 주불로 모시고,

좌우보처로 제화갈라보살과 미륵보살을 봉안하고

그 옆으로 부처님의 제자 중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얻은 16나한(아라한의 줄인 말)을 봉안한 법당이다.

 

 우측면에서 본 응진전과 쪽마루의 모습.

 응진전에 모셔진 석가모니불과 좌우협시인 미륵보살과

제화갈라보살 모습.

 석가모니불의 좌협시로 봉안된 미륵보살의 모습.

미륵보살은 보관에 탑을 묘사하거나

손에 탑을 가지며, 손에 든 연꽃에 탑을 묘사하는 것이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바로 영산암 응진전의 미륵보살은

보관에 탑이 묘사되어 있어서 미륵보살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대개의 다른 사찰에 모셔진 미륵불은

외형상으로 다른 불상과 구분할 수 없다.

수인도 석가모니 부처님과 같은 형태를 취하고 있어

구별이 쉽지 않다.

그때는 사찰 조상기의 기록에 의하여 구분해야 한다.

영산암이라는 이름은 석가모니가 『법화경』을

설법하였던 영취산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보통 줄여서 영산이라고 부른다.

봉정사 영산암은 영취산에 모여 석가모니의 설법을

듣는 나한에 초점을 두어 응진전을 중심 건물로

보기 때문에 영산암이라 하였다고 볼 수 있다.

 분명하지는 않지만 응진전 외벽에 그려진

사슴으로 보이는 상서로운 동물 그림의 벽화.

 

 응진전 외벽의 또 다른 벽화.

 

응진전 외벽에 그려진 용과 사람이 사투를 벌리는 듯한

분위기의 벽화가 나의 시선을 멈추게 했다.

내 기준으로 볼 때, 생전 처음보는 특이한 그림이었다.

불교신문에 실린 "사람이 되고 싶은 용의 서원"이란

기사의 내용을 옮겨 본다.
참고로 「보살본연경」용품(龍品)에 용왕과 관련한

내용이 있다.
아직 번뇌가 남아있어 윤회의 세계에 머무른다면

천, 아수라, 인간, 축생, 아귀, 지옥인 육도중생 가운데

어디가 제일 좋을까?

천상 세계는 즐거움만 있어 공부에 마음을 두지 않아

시간이 흐르면 결국 나락(지옥)으로 떨어지고,

아수라는 싸움에만 정신이 팔려 다음 생도
불확실하며, 죽음의 공포 속에서 결국 생을 마감하는

어리석은 축생, 배고픔의 과보에 고통을 감내하는

아귀, 고통을 멈출 시간적 여유가 없는 지옥 등에서는

자신의 내면을 살필 시간적 여유가 없어

성불의 길은 멀고도 멀기만 하다.

인간은 어떨까?

인간은 살면서 천상에서부터 지옥에 이르기까지

윤회의 세계를 모두 다 느낄 수 있으니

자기 마음먹기에 따라서 쉽게 성불에

이르기도 하고 나태하여 지옥의 나락으로

떨어지기도 한다.
그러니 성불의 길에 이르기 쉬운

인간 몸 받기가 그리 쉽지 않다고 말한다.

용(龍)은 변화무쌍한 자신의 능력을 바라지 않고

오직 인간으로 태어나서 성불하기를 갈구한다.

인간이 되려는 서원으로 용이 잡혀준 줄도 모르고

용을 잡았다고 즐거워하는 두 사람이 욕심 가득한

얼굴에 웃통을 벗어 던지고 바지를 걷어올린

차림으로 긴 밧줄을 용의 흰 콧수염에 묶어서

안간힘을 쓰며 당기고 있다.

두려움이나 죽음에 대한 공포를 벗어 던진 용은

오히려 목숨을 내어놓는 것이 좋은 듯 웃고 있다.

용의 두 뿔엔 턱밑 푸른 수염을 가지런히 말아서

모든 것이 말끔하게 정리되었다.

상상을 뛰어 넘는 해학성이다.

이 벽화는 욕심 많은 인간들에게 인욕바라밀을

가르쳐 주고 있다.

이 벽화를 바라보면서 전생에 용왕이었던

석가모니 부처님의 인욕바라밀을 직접 느껴보기에도

충분하다.

우리는 이 용처럼 목숨을 버리는 인욕바라밀을
할 수 있을까?

그래서 사바세계는
늘 참으며 살아가는 세계라 한다.

[참고문헌]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유홍준 저),

향토문화전자대전(한국학중앙연구원),

천등산 봉정사(이효걸 저),

답사여행의 길잡이10-경북 북부

(한국문화유산답사회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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