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

단석산 신선사

[더 꿈] 감성인 2020. 11. 16.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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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경주시  건천읍 단석산 신선사

단석산(斷石山)의 단석(斷石)은

김유신 장군이 검으로 내리친 바위라고 하고,

김유신 장군이 물을 마셨기 때문에 이름이 남은 음마지,

물을 마신 곳이 장군지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다.


삼국통일의 공신인 김유신은 595년(진평왕 17년)

충북 진천에서 서현장군의 첫아들로 태어났다.

김수로왕의 13대손인 김유신은 15세에 화랑이 되어

삼국통일의 큰 뜻을 품고 서라벌 서쪽 산에 있는

석굴에 들어가 목욕재계하고 천지신명께 고구려, 백제,

말갈을 물리칠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기도하자

4일만에 한 노인이 나타나 김유신에게 비법이 담긴

책과 신검(神劒)을 주었다고 삼국사기, 동국여지승람,

동경잡기에 소개되어 있다. 

고구려, 백제와 싸울 때마다 승리를 거두었다고 하며,

당시 화랑들이 수도하던 산에서 김유신은 이 신검으로

검술을 닦았는데, 시험 삼아 칼로 바위를 내리치니

바위가 갈라졌다.

바위들을 베었다고 하여

이름이 단석산(斷石山)으로 되었다. 

뒤에 갈라진 틈에 절을 세워 단석사라 불렀다는 것이다.

경북 경주시 건천읍 송선2리 산89번지.

단석산 중턱에 위치하고 있는 신선사는 7세기에

활동하던 자장의 제자 잠주(岑珠)가 창건했으며,

김유신(金庾信, 595∼673년)이

이 절에서 삼국통일을 위해 기도했다고 한다.

1969년 한국일보사가 주관한 신라오악(新羅五岳)

조사단이 마애불상 바위에 새겨진 명문을 분석하여

석굴의 본래 이름이 신선사였음을 밝혀냈다.

석굴 바위에 얽힌 전설이 전한다.

옛날 절 아래에 살던 한 젊은이가

이 곳에 올라와 보니 노인들이 바둑을 두고 있었다.

이들이 두는 바둑을 구경하고 집에 돌아와 보니

아내는 이미 백발의 노파가 되어 있었다.

50년이 지난 것이다.

그 뒤부터 이 바위를 신선이 바둑을 둔 곳으로 불렀고,

절 이름도 신선사(神仙寺)로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이 석굴은 작은 암자처럼 쓰이고

50m쯤 아래에 신선사가 있다.

대웅전 바로 옆 고목나무에 걸려있는

'대한불교법화종 단석산 신선사'라는 현판이다.

이 건물은 신선사의 주법당이며

'大雄寶殿(대웅보전)'이라는 편액(扁額)이 걸려 있고,

건물의 양식은 자연석의 주춧돌 위에 민흘림의

기둥을 세우고, 정면 3칸, 측면 2칸, 겹처마에

맞배지붕이고 측면에는 풍판을 달았다.

대웅전의 기둥에 걸려 있는 주련의 내용
天上天下無如佛(천상천하무여불)

 - 하늘 위, 하늘 아래 어디에도 부처님 같은 분 없으니,
十方世界亦無比(시방세계역무비)

 - 시방세계 다 둘러봐도 비교할 이가 없다.

世間所有我盡見(세간소유아진견)

 - 세간(세상)에 있는 모든 이를 다 보아도,
一切無有如佛者(일체무유여불자)

 - 그 누구도 부처님 같은 분 없다.

본존불인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좌우협시는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이 봉안되어 있다.

대웅전 내부에는 삼존불을 중심으로

좌측에는 칠성탱이 봉안되어 있고,

우측에는 지장보살상이 봉안되어 있으며,

측면에는 동진보살을 중심으로 범천과 제석천왕,

사천왕과 여러신중을 함께 그린 신중탱이 모셔져 있다.

야외에 모셔진 석조석가모니불좌상

정면과 측면 1칸의 겹처마에 맞배지붕을 한 건물로

측면에는 풍만을 달았으며,
'山靈閣(산령각)'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고,

내부에는 산신탱과 독성탱이 함께 모셔져 있다.

산신탱에 그려지는 산신은 도포를 입고 흰 수염을 기른

인자한 얼굴의 노인이 전형적인 모습이다.

흰 수염이나 도포 등에서 산신신앙이 도교(道敎)에서

유래하였음을 보여준다.

산신의 주변에는 그윽한 골짜기를 배경으로 하여

소나무와 기암괴석이 배치되곤 한다.  그

리고 산신 옆에는 시중을 드는 동자(童子)가

차를 끓이거나 복숭아를 놓아둔 쟁반을 받쳐 들고 있다. 
 
또한 산신 옆에서 웅크리고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호랑이는 커다란 눈망울을 부라리는 모습도 있지만,

온순하게 얌전히 앉아 있는 호랑이 그림도 꽤 많다.  

산신탱에 호랑이가 등장하는 것은 옛날에는 깊은 산에

호랑이가 있었던 것과 무관하지 않지만, 

곧 호랑이를 의인화한 것이 산신며,

호랑이와 산신을 같다고 본다.
  
산신은 바위 위에 앉거나 혹은 호랑이의 등에

올라타고 있는 경우도 있으며, 한 손으로는 부채,

주장자, 불자, 경전 등을 쥐고 있다.

불자나 경전을 들고 있는 것은 산신신앙이 불교의

한 영역이 되었음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밖에는 부채를 들고 있는 경우가 가장 많다. 

사슴 꼬리처럼 생긴 모양의 부채는 추미라는 것으로

천하를 호령하고 통솔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독성탱(獨聖幀)이란 재가신도이면서 홀로 수행하여

깨달음을 얻은 나반존자(那畔尊者)를 그린 그림이다.

그림의 구도는 아주 간단해서 화면 중앙에 도포같이

헐렁한 옷을 입은 나반존자가 정면을 보고 앉아 있는

경우가 가장 많다.

나반존자는 머리를 깎은 모습이지만 승복과는

다른 편의복을 입고 있어 그가 재가신자임을 나타낸다.

그리고 주변에 동자가 시중들고 있는 구도도 있는데,

이것은 산신탱의 영향을 받은 때문으로 보인다.

독성각에 걸리게 되며, 칠성탱, 산신탱과 함께

삼성각에 봉안되기도 한다.

삼성각에 걸리는 경우는 항상 칠성탱이 중앙에 놓이고

그 좌우에 독성탱과 산신탱이 걸리는데,

칠성탱의 왼쪽에 독성탱이 걸리는 경우가 많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적지 않다.

본래 우리나라에서는 왼쪽이 조금 더 상위(上位)라는

개념이 있는데, 불단에 봉안되는 불보살상도

이러한 개념으로 배치하게 된다.

하지만 삼성각에 봉안되는 독성탱과 산신탱의 경우는

반드시 칠성탱 왼쪽에 독성탱이 놓여야만 된다는 원칙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경북 경주시  건천읍 송선리 산89번지에 자리하고 있는 

국보 제199호. 경주 단석산 신선사 마애불상군

(慶州 斷石山 神仙寺 磨崖佛像群)은 

단석산 중턱에 이르면 거대한 암벽이 ㄷ자 모양으로

높이 솟아 하나의 석실(石室)을 이루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여기에 인공적으로 지붕을 덮어서 석굴 법당을

만들었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바위면에는

10구의 불상과 보살상이 새겨져 있어 장관을

이루고 있다.

동북쪽의 독립된 바위면에는 도드라지게 새긴

높이 8.2m의 여래입상이 1구 서 있다.

둥근 얼굴에 미소가 가득하며, 머리 위로 2단으로 된

상투 모양의 머리묶음이 작게 솟아있다.

양 어깨를 감싸고 있는 옷에는 U자형 주름이 선명하고,

트인 가슴 사이로는 띠매듭이 보인다.

오른손은 어깨 높이로 들어 손바닥을 보이고

왼손은 내려 손끝이 아래로 향하여 손바닥이

보이게 하고 있다.

동쪽면에는 높이 6m의 보살상이 새겨져 있는데,

상반신에는 옷을 걸치지 않았으며,

왼손은 들어서 가슴에 대었고

오른손은 몸 앞에서 보병(寶甁)을 쥐고 있다.

마멸이 심해서 분명하지는 않지만 남쪽면에도

광배(光背)가 없는 보살상 1구를 새겨서 앞의

두 불상과 함께 삼존상을 이루고 있다.

이 보살상의 동쪽면에는 400여 자의

글이 새겨져 있는데, ‘신선사(神仙寺)에

미륵석상 1구와 삼장보살 2구를 조각하였다’라는

내용이다.

북쪽 바위면에는 모두 7구의 불상과 보살상,

인물상이 얕게 새겨져 있다.

뒷면에는 왼쪽에서부터 여래입상, 보관이 생략된

보살입상, 여래입상, 반가사유상을 나란히 배치하였다.

반가사유상을 제외하고는 모두 왼손을 동쪽으로

가리키고 있어 본존불로 인도하는 독특한 자세를

보여준다.

아래쪽에는 버선같은 모자를 쓰고 공양을 올리는

모습을 한 공양상 2구와 스님 한분이 새겨졌는데,

신라인의 모습을 추정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7세기 전반기의 불상 양식을 보여주는 이 마애불상군은

우리나라 석굴사원의 시원(始原) 형식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클 뿐만 아니라, 당시 신앙의 흐름을

이해하는 데에도 중요한 자료를 제공해주고 있다.

단석산 중턱에 이르면 거대한 암벽이 ㄷ자 모양으로

높이 솟아 하나의 석실(石室)을 이루고 있는
국보 제199호. 경주 단석산 신선사 마애불상군

(慶州 斷石山 神仙寺 磨崖佛像群)을 볼 수 있다.
이곳에 지붕을 덮어서 석굴 법당을 만들었을 것으로

생각되며, 전면과 좌우 바위면에는 10구의 불상과

보살상이 새겨져 있어 장관을 이루고 있다.

마멸이 심해서 분명하지는 않지만 남쪽면에도

광배(光背)가 없는 보살상 1구를 새겨져 있고,

이 보살상을 중심으로 우측에는 400여 자의 글이

새겨져 있는데, ‘신선사(神仙寺)에 미륵석상 1구와

삼장보살 2구를 조각하였다’라는 내용이 있다.

동쪽면에는 높이 6m의 보살상이 새겨져 있는데,

상반신에는 옷을 걸치지 않았으며,
왼손은 들어서 가슴에 대었고 오른손은 몸 앞에서

보병(寶甁)을 쥐고 있다.

동북쪽의 독립된 바위면에는 도드라지게 새긴

높이 8.2m의 여래입상이 1구 서 있다.
둥근 얼굴에 미소가 가득하며, 머리 위로 2단으로 된

상투 모양의 머리묶음이 작게 솟아있다.
양 어깨를 감싸고 있는 옷에는 U자형 주름이 선명하고,

트인 가슴 사이로는 띠매듭이 보인다.
오른손은 어깨 높이로 들어 손바닥을 보이고

왼손은 내려 손끝이 아래로 향하여 손바닥이

보이게 하고 있다.

 

동북쪽의 독립된 바위면에

새겨진 여래입상의 좌우 발모양이다. 

북쪽 바위면에는 모두 7구의 불상과 보살상, 인물상이

얕게 새겨져 있다.
뒷면에는 왼쪽에서부터 여래입상, 보관이 생략된

보살입상, 여래입상, 반가사유상을 나란히 배치하였다.
반가사유상을 제외하고는 모두 왼손을 동쪽으로

가리키고 있어 본존불로 인도하는 독특한 자세를

보여준다.

여래입상

보살입상 

여래입상 

반가사유상

 

북쪽 바위면의 아래쪽에는 버선같은 모자를 쓰고 공양을

올리는 모습을 한 공양상 2구와 스님 한분이 새겨졌는데,

신라인의 모습을 추정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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